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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Oslo - Nor…
노르웨이의 수도
스카게라크 해협으로부터 약 100km나 만입한 오슬로 피오르드 깊숙이 있으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정치·문화·상공업의 중심지이며 부동항이다. 시가는 왕궁으로 통하는 칼 요한스로(路)를 축으로 하여 방사선으로 도로가 나 있고, 구시가의 도심부에서 북쪽과 북동쪽의 계곡을 따라서 공장지대가 늘어서 있다. 신시가의 주택구는 이 공장지대를 둘러싸고 있으며, 특히 북서·남동쪽으로 널리 발전하여 근대적인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왕궁은 1848년에 세운 것으로, 부근에 국회·시청사(시의 900년 축제를 기념하여 1950년 건립) 등이 있고, 부두 가까이에 있는 아케르스후스 성채는 130년경에 세워져 1319년~1380년까지 왕의 거성(居城)이었다. 오슬로는 하랄 하르드로데 3세에 의하여 1050년경에 창설, 14세기에는 한자동맹에 속하여 번영하였다. 1624년의 큰 화재 후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가 재건한 것을 기념하여 크리스티아니아로 개명하였다가 1925년에 다시 옛 이름인 오슬로로 고쳤다.

금속·석탄·섬유제품·유지(油脂) 등을 수입하고, 목재·펄프·종이·어류 등을 수출한다. 공업도 활발하여 조선·금속·전기기구·기계·화학공업·의복·제지·양조 등 다방면에 미치고 있다.

많은 문화시설 가운데 주요한 것으로는 1811년에 창립한 오슬로대학교, 노벨연구소·시립미술관·비겔란박물관·비겔란공원(수많은 조각으로 유명) 등으로, 오슬로대학교 강당을 장식하는 뭉크의 벽화도 특기할 만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박물관은 배후의 언덕에 보이는 점프대와 함께 이 나라 스키의 융성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겨울 스포츠 기반 시설을 이용하여 1952년 제6회 동계 올림픽이 이곳에서 열렸다.

시 남서부에 있는 뷔그데이에는 해사(海事)에 관계한 전시물과 박물관이 있으며, 발굴된 바이킹의 배와 난센의 극지탐험대가 사용한 프람호(號), 노르웨이 탐험가 T.헤위에르달의 콘티키호 등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고, 항해박물관 및 민속박물관도 있다.
원어명
Oslo(노)
위치
노르웨이
경위도
동경10°45′23″ 북위59°56′58″
면적
454㎢
시간대
CET(UTC+1)
행정구분
15 borough, 1 city centre, 1 rural/recreational area
홈페이지
www.oslo.kommune.no
인구
560,484(2008년)명


 

 
출처: 두산백과
헬싱키 Helsinki -…
핀란드의 수도
스웨덴어로는 헬싱포르스(helsingfors)라고 한다. 현재의 도시역은 핀란드만(灣)에 돌출한 작은 곶(串)과 그곳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1550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1세(일면 구스타브 바사)가 처음으로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당시의 위치는 곶의 동부에서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후미 안쪽에 있었다. 구스타브 1세는 대(對)러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이 도시를 건설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도시역은 현재의 위치로 옮겼는데 급속히 성장한 것은 투르쿠에 있던 수도가 옮겨온 1812년 이후였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항구도시로, 발트해(海) 항로의 객선이 기착하는 남항(南港) 외에 북항·서항이 있어 기능이 분화되어 있다. 핀란드 최대의 수입항이며 동시에 수출항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쇄빙선(碎氷船)을 가동하여 항로를 유지한다. 북항을 중심으로 한 동쪽 연안부와 서항 주변은 공업지역으로, 조선(특히 쇄빙선)을 비롯하여 섬유·식품·금속·기계·도기 등의 생산이 활발하다.
철도는 국내 각 지역과 연결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 국제철도가 통한다. 국영 항공회사인 핀에어가 유럽 및 북아메리카 간을 연결한다. 남항에 면하는 마켓 광장에는 노천시장이 열려 시민이나 관광객이 모여드는데, 일대에는 대통령 관저·스웨덴 대사관·시청 등이 들어서 있다. 그 바로 북쪽이 시의 중심인 상원광장(上院廣場)으로 헬싱키대학과 러시아 양식의 대성당, 정부기관이 주위에 집중되어 있다. 녹지대가 많은 시내에는 국립박물관·국회의사당·음악당 외에 개성 있는 근대적 건축물이 전통적인 교회 건축물과 잘 조화되어 청결한 도시를 이루며, ‘발틱의 아가씨’라고 부른다.
북위 60°10'의 고위도에 위치하나 기후는 온화하여 2월 평균기온이 -5.8℃, 7월이 17.3℃, 연평균 강수량은 698mm이다. 1952년 이곳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위치
핀란드 핀란드만(灣)에 돌출한 작은 곶(串)과 그곳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경위도
동경 24°56′15″, 북위 60°10′15″
면적
715.49㎢
시간대
UTC+2, Summer: UTC+3
행정관청소재지
Pohjoisesplanadi 11-13, CITY OF HELSINKI, FINLAND
홈페이지
http://www.hel.fi
인구
604,380(2012년)명
 


 
출처: 두산백과

 
탈린 Tallin - Esto…
에스토니아의 수도
 
발트해의 핀란드만(灣) 연안에 있는 항만도시이다. 에스토니아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핀란드의 헬싱키와는 약 80km 거리에 있다. 큰 강이 흐르지 않는 도시로, 면적 9.6km²의 울레미스트 호수(Ülemiste järv)가 탈린의 가장 중요한 수원이다.
 
위치
에스토니아
경위도
동경 24°44′43″, 북위 59°26′14″
면적
159㎢
시간대
UTC+2, Summer: UTC+3
홈페이지
www.tallinn.ee
인구
419,830(2013년)명
기원은 1219년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인이 만든 성채 자리에 성을 삼은 데에서 비롯한다. 13세기에 비스뷔·뤼베크·브레멘 등 발트해 연안 여러 도시의 상인들이 이주하면서 한자 동맹의 중심도시가 되어 무역항으로 발전하였다. 한자 동맹의 연맹도시가 된 것은 1285년이며, 스웨덴 영토에서 러시아 영토가 된 후 1710년 대북방전쟁이 발발하자 흑사병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20년 타르투 평화조약을 소비에트 정권이 동의함으로 에스토니아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세계 제 2차 대전 발발 후 탈린은 1940년 소비에트 영토에 편입된다. 독일 나치의 지배를 받은 기간은 1941년에서 44년까지이다. 나치의 지배 후 소비에트연방의 영토로 돌아온 후로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ESSR)의 수도가 되었다. 

이 후 1988년 탈린 교외에 약 30만명의 에스토니아인이 모여 소련에서 금지되었던 에스토니아의 민요를 부르는 사건이 일어났고, 1989년에 탈린, 리가, 빌뉴스의 발트3국의 도시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탈린은 1991년 8월 20일 독립국가 에스토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이동하고 EU 가입을 계기로 경제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탈린은 8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또한 탈린의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ld Town) of Tallinn)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탈린은 역사상 여러 번의 침략을 경험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구시가는 성벽 등이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구시가지에 속한다. 석회암의 언덕에 위치한 구시가에 세워진 톰페아 성(Toompea Loss)을 중심으로 역사지구가 형성되며, 주변에는 러시아 제정기에 세워진 알렉상드르 네프스키 대성당(Tallinna Aleksander Nevski katedraal)이 있다.

탈린은 크게 세 지구로 나뉘어지는데 톰페아(Toompea)로 불리는 이 구시가에 에스토니아 국회와 정부 시설, 성모 마리아 루터회 성당(Toomkirik)이 있다. 그리고 중세 시대 무역으로 번성했던 옛 한자동맹의 모습을 지닌, 알린으로 불리는 낮은 구시가 지역이 있으며, 이 구시가의 남쪽에는 에스토니아인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정착한 시가지가 있다. 12세기의 고딕 양식 건축으로 올라프 교회(Oleviste kirik)가 알린 지역에 있다.
 

 

 


대북방전쟁 시기 지어진 카드리오그 궁(Kadrioru loss)은 에스토니아 미술관(KUMU)으로 쓰이고 있다. 교육 시설로는 탈린 대학, 탈린 기술대학 등이 있다. 2011년에는 핀란드의 투르쿠(Turku)와 함께 유럽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에 선정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코펜하겐 Copenha…
덴마크의 수도
 
덴마크어로는 쾨벤하운(København)이라고 한다. 셸란섬의 북동안에 있는 무역항으로 대안에 있는 스웨덴의 말뫼 사이에는 철도연락선이 오간다. 코펜하겐의 기원은 오래며, 1043년에는 하운(Havn) 또는 하프니아(Hafnia:항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1167년에 최초로 성채가 축조된 뒤에 발전하여 13세기 중엽에는 수륙 교통의 요지를 차지하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쾨벤하운(去來港)이라고 하였다. 13~16세기에 한자동맹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1422년 도시권을 획득하였고, 1443년 이후 덴마크의 도시가 되었다. 1658∼1659년 스웨덴의 공격을 받았으며, 1660년에는 이곳에서 코펜하겐 조약이 체결되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1801년과 1807년, H.파커와 H.넬슨이 이끄는 영국함대의 포격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1940∼1945년에 독일군의 지배를 받았고, 연합국의 폭격으로 항구와 조선구(造船區)가 파괴되었으나 시가지의 피해는 없었다. 구(舊)시역의 중심은 사각형 광장 콩겐스뉘토르이며, 인접한 카를로텐보르궁전은 17세기의 건조물로 현재는 왕립미술협회이다. 해안 가까이에 현(現)왕궁인 아말리엔보르궁전, 가로를 사이에 두고 ‘대리석의 가람’이라는 프레데릭스교회, 그 남쪽에 좀 떨어져서 왕립극장·니콜라이 교회 등이 있고, 도심부의 남단에 중앙역·티볼리 공원·시청사 등이 있다. 왕궁의 북쪽에는 별 모양으로 해자(垓子)를 두른 성채가 있고, 그 해안에 H.C.안데르센의 동화로 유명한 인어상(人魚像)이 있다.
시내에는 녹지가 많으며 유서 깊은 궁전·교회 등의 건축물이 많아 유럽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미술관·박물관이 많고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학회·연구기관의 본부가 있다. 대안의 아마게르섬에는 조선소와 철공장 등이 있다. 공업은 도자기·낙농제품·화학·섬유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며 가구·피아노 등도 유명하다.
 
원어명
København(덴)
위치
덴마크
경위도
동경12°34′7.32″ 북위55°40′30″
면적
2673㎢
시간대
UTC+1
행정관청소재지
Gammel Kongevej 1, 1610 Copenhagen V, Denmark
홈페이지
http://www.copcap.com/
인구
1,145,804(2008년)명




 
 출처: 두산백과

리가 Riga - Lativi
라티비아의 수도 (Photoed by Vita Balckare)
 
리가만(灣)으로 흘러드는 다우가바강(西드비나강)의 양안에 걸쳐 있다. 리가에 대한 문헌기록은 12세기부터 등장한다. 동로마제국에의 교역로로서 아주 옛부터 다우가바강을 이용했다. 12세기에 교역 뿐 아니라 어업과 축산의 거점이 되었으며, 독일에서 상인들이 12세기 후반부터 드나들었다.  러시아 연방과 서부 유럽과의 통상 중계지로서 중세 때부터 상업·수공업이 발달하였으며, 13세기에는 한자동맹에 가맹했다. 당대 라트비아의 동남부는 리보비아(Livonia)로 불렸다. 1561년 독일기사단(Deutscher 0rden)의 해체 후 약 20년간 독일의 황국자유도시(Freie Reichsstadt)였다. 1581년부터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621년부터는 구스타프2세가 통치하는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8세기 대북방전쟁 이후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 제 1차 세계대전까지는 러시아령이었다. 20세기까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이은 제3의 도시는 리가였다.
 
위치
라트비아
경위도
동경 24°6′23″, 북위 56°56′56″
면적
304㎢
시간대
UTC+2, Summer: UTC+3
행정구분
www.riga.lv
인구
699,203(2012년)명
1918년 프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Brest-Litovsk Treaties)으로 독일에 할양되었으나 1차 세계대전 종결 후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리가는 먼저 소비에트 연방에, 그 후 독일 나치의 점령을 경험했다. 이 전시에 발트-독일인은 도시를 탈출했고, 남은 유태인들이 총살되는 카이저월드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 Kaiserwald)가 존재했다. 1991년에 이르러 라트비아는 독립을 회복하고 리가 또한 수도의 위치를 확립했다.발트 해의 진주로 불리는 리가의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Riga)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리가의 이 구시가 지역은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건축물들로 유명하다. 남쪽으로는 리가 역과 중앙시장을 두고, 서쪽으로는 다우가바강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신시가가 펼쳐진다. 구시가는 독일보다 독일적이라고 일컬어졌던 중세 독일도시의 면모가 보인다. 한자동맹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옛 모습이 잘 남아 있으며,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한다. 유적으로는 14세기의 리가 성(Rīgas pils),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리가 대성당(Rīgas Doms)이 있다. 그 외 역사지구의 명소로 루터교의 교회이며 첨탑이 특징적인 성 페트로 교회(Svētā Pētera Evaņģēliski luteriskā baznīca)와 자유 기념비(Brīvības piemineklis)가 있다.
 
 



 
출처: 두산백과

스톡홀름 Stockho…
스웨덴의 수도
발트해로부터 약 30km 거슬러 올라온 멜라렌호(湖) 동쪽에 있으며, 시가는 많은 반도와 작은 섬 위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수면과 운하 때문에 흔히 ‘북구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기온은 1월이 -1.6℃, 7월이 16.6℃, 연간 강수량은 555mm이다. 해항·공항·지하철·버스망이 완비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정치·문화·상공업의 중심지이다. 스톡홀름은 1250년에 스타덴섬에서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 무렵의 교회와 시장의 광장, 불규칙한 도로 등이 남아 있다.
 
원어명
Stockholm(스)
위치
스웨덴
경위도
동경18°04′ 북위59°21′
면적
377.3㎢
시간대
UTC+1
홈페이지
www.stockholm.se
인구
798,715(2008년)명

 
1255년경부터는 한자동맹(Hansa League)에 속하는 항만도시로서 번영하였으며, 당시에는 독일계 시민의 세력이 컸다. 1520년에는 스웨덴 국왕을 겸하고 있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가 반대세력을 탄압하여 스웨덴계 귀족을 학살하였다. 이를 계기로 구스타브 바사(후일의 구스타브 1세) 아래 결속한 세력은 1523년에 한자동맹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17세기에는 크리스티나 여왕 치하에서 시의 정비가 진행되었으며, 수도였던 웁살라 대신 수도가 되어 북유럽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급속히 발전해 나갔다. 그 특징은 바로크풍의 건물에 잘 나타나 있다. 1850년부터는 제3의 발전기에 들어갔으며, 낭만적인 전원도시에서 현대적인 도시로 발전하였다.
1950년부터는 대규모의 도시계획으로 도심지를 헐어 새로운 비즈니스가(街)와 공원을 건설하였다. 특히 빈민가가 전혀 없는 것이 스톡홀름의 자랑이다. 시의 주요부는 스타덴섬의 북쪽 대안지구(對岸地區)에 있다. 도심 가까이에 중앙정거장이 있고, 수로를 건너 시청사(1911∼23 건조)가 있는데, 이 청사는 건축미로 유명하다. 역의 동쪽에는 상점가에 섞여서 은행·신문사·인쇄소 등이 각각 분화된 지구를 이루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스톡홀름대학·아카데미·국립박물관·노벨연구소 이외에 의학·경제·공학·행정·미술·음악 등의 전문학교가 있고, 2개의 교향악단과 하나의 가극단 등이 있다. 해마다 있는 노벨상 수상식은 콘서트홀에서 거행되고, 축하연은 시청사에서 베풀어진다. 시가지의 북부에는 1912년에 만들어진 올림픽 경기장이 있고, 동쪽의 스칸센섬에는 노르딕박물관과 유원지가 있다.
수로의 남안(南岸)에는 많은 조선소와 공장이 있으며, 그 밖에도 양조·식품·화학공업 등이 활발하다. 또 역사가 오래 된 성냥 제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공업 중에서도 의복·인쇄 등의 공장은 시가지 쪽에 분산해 있고, 조선·화학·직물·자동차·고무·전기(電機) 등의 공업은 본사만 시내에 두고, 공장은 땅값이 싼 지역으로 옮기는 경향이다. 시의 서쪽 약 10km 지점의 브로마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시가지는 많은 섬과 반도에 흩어져 있으나 철도·지하철·버스 등으로 능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외에는 높고 낮은 아파트군(群)이 뒤섞여 변화의 묘를 보이고 있으며, 건설 당시의 기술과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에는 중립국의 수도로서 외교활동의 무대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핵무기 금지운동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회의가 많이 열리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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